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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3. 남한산성 한 바퀴 9 Km를 느릿한 걸음으로

pebblebeach 2013. 7. 5. 08:10

 

장마가 시작되면서 때로는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하지만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된다.

어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오늘은 장마전선이 남부에 걸쳐있다는 기상 예보다.

부리나케 준비를 하고 오늘은 평소에 마음 먹었던 남한산성 성곽 한바퀴를 돌 생각이다.

지하철 8 호선 남한산성 입구역에서 하차하여 산성유원지로 향하는 버스 10 또는 10-1을 타라지만

날씨도 좋고 이왕 하이킹을 왔는데 걷기로 한다. 20분 정도 걸려 유원지 입구에 도착한다.

약사사게곡에는 소풍나온 가족들과 체력단련하는 노인들로 평일이지만 꽤 붐비고 있다.

 

왼쪽은 산속 트레일과 오른쪽은 계곡 사이의  걷고싶은 맨발 지압장.

 

약사사와 탑골을 지나 영도사, 덕운사, 백련사를 거쳐  남문으로 향한다.

 

덕운사 대웅전 뒤의 남문 방향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있다.

 

남문이 가장 아름답다는 Photo Point에서 남문을 잡아 보았다.

남한산성은 한성 백제시대의 성산이요 진산의 개념으로 백조의 시조 온조왕의 사당 숭열전이 있는 곳이며

통일 신라시대에는 주장성 또는 일장산성으로 불렀으며 한강 유역의 중요 산성으로 발전하였다.

 

남문은 서남쪽 곡저 해발 370m에 위치한다.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 할 때 개축하여 지화문으로 칭하였다.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 문이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다.

남문은 1976년 문루가 복원되었으며 2009년 정조의 글씨를 집자하여 현판을 설치했다.

 

인조왕 원년 (1623)에 성의 축성을 시작하여 1626년에 완성된 본성의 둘레만 9 Km 이다.

제 1 남 옹성을 지나 제 2 남 옹성 가는 방향의 산성을 밖에서 보고있다.

 

제 1 남 옹성 암문이라 불리우는 제 7 암문

 

제 1 남 옹성 과  제 2 남 옹성 사이의 제 8 암문

 

남한산성에는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중 3개의 옹성이 산성 남쪽의 완만한 지형을 보완하고 있다.

사진은 보수공사중인 제 2 남 옹성으로 2013년 10월에 완공 예정이다. 제 3 남 옹성도 보수 공사중으로

성곽 밖의 숲길로는 동문 접근이 쉽지않아 부득이 제 3 남 옹성에서 제 8 암문으로 되돌아 들어왔다.

 

남장터에서 성곽을 따라 동문으로 가야하지만 성읍 산성리로 내려오면서 

남단사터를 지나고 청량산 개원사 조계문 일주문을 지나는 등산로로 내려온다.

 

현종 13년 (1672) 부윤 이세화가 지은 정자 - 지수당

 

지수당에서 600m 덜어진 동문은 남한산성에서 제일 낮은 곳에 있다.

행궁을 중심으로 동문이 좌측이 되므로 좌익문이라 한다. 

 

동장대 암문으로 향하면서 동문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에서 동문을 뒤돌아 본다.

남문과 마찬가지로 중앙에 홍예문을 두고 문루 위에는 팔작지붕을 올렸다.

 

동문에서 동장대 암문까지는 약 45 분간 1.5 Km 오르막을 오른다.

 

'솔바위 정자'라는 송암정터를 지나고

 

동장대가 있던 터

 

장경사신지 옹성. 둘레가 159 m이다.

 

제 2 암문 (장경사신지 암문)

남한산성에는 모두 16개의 암문이 있는데 본성에 11개, 봉암성에 4개, 한봉성에 1개가 있다.

 

제 2 암문을 문 밖에서 본 모습이다.

본성에 설치된 암문 대부분이 문 위가 홍예문이지만 제 6 암문과 이 암문은 '-'자로 만든 평거식 문이다.

 

제 3 암문 - 봉암성 암문 - 은 본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주 출입구,

봉암성 - 남한산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곽이 아닌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봉암성은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벌봉일대를 포괄하여 쌓은 외성이다.

 

남한산성의 여장 (女墻)

여장이란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

보수공사가 계획되고 있으며 남한산성 도립공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할려는 노력이 보인다.

 

벌봉터 옆의 제 13 암문

 

동문 (좌익문)에서 북문 가는 방향의 성곽과 늘씬한 노송들

 

북문 - 정조 3년 성문을 개축하고 戰勝門이라 불렀다.

병자호란 당시 군사 300명이 청나라 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하였다 (법화골 전투)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북문 (전승문)을 지나 서문에 이르는 길에도 늘씬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마을주민들이 국유림을 불하 받은 뒤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을 만들어 보호했다고 한다.

 

서문 (우익문) 해발 450m에 위치한다. 전승문에서 1 Km.

서문은 산성의 서쪽 사면의 경사가 급해 이 곳에서 물자를 이송하기는 어렵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서문에서 수어장대까지는 0.6 Km이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진 누각이다.

 남한산성의 가장높은 해발 498.5 m 청량산에 위치하며 해가 가장길어 日長山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수어자애에 있는 360년된 보호수 향나무

 

수어장대는 2층 누각형태의 목조 팔작지붕인데 바깥쪽 편액에는 '수어장대', 안쪽에는 '무망루'라고 쓰여있다.

병자호란때 인조가 45일동안 직접군사를 지휘한 피어린 항전의 현장이다.

수어장대는 서쪽에 있다하여 서장대라고도 한다.

 

無忘樓라는 편액은 병조호란 당시 인조가 껶은 모진 고통과 시련, 볼모로 심양까지 잡혀있다가

돌아온 효종의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영조가 붙인 이름이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청량당 - 남한산성 축성당시 동남쪽 책임자였던 이회장군과 그의 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제 6 암문 (서암문) - 제 2 암문과 더불어 개구부가 평거식 암문이다. 인조 15년 한밤중에 습격해 온 청병을

크게 물리친 곳이어서 이 암문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고 부른다.

 

제 6 암문을 바깥에서 본 모습이다.

 

수어장대에서 남문으로 가지않고 북서쪽 경사면 등산로를 따라 유일천 약수와 호국사방면으로 하산을 한다.

 

남한산성의 성곽 일주는 산성종로에서 출발하면 남문 우측 성곽을 따라 수어장대로 향하는게 일반적이지만

나는 산성유원지에서 등산로를 따라 남문에 도착하여 제1, 제2, 제3 옹성을 성곽 밖에서 구경하고

다시 등산로를 따라 남단사 터와 개원사 일주문을 거쳐 산성리 성내로 들어와서 동문 (좌익문)에서

성곽일주를 시작하였다. 성곽 일주가 9Km이고 지하철 남한산성 입구역에서 유원지와 남문까지 거리.

수어장대에서 지하철 5호선 마천역까지 거리를 감안하면 오늘 족히 15-6 Km를 걸은 듯 하다.

 

7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서래마을 깐부치킨에서 시원한 이치방 시보리 생맥주로 피로를 푼다 ㅎㅎ

 

 

 

2013년   7월   3일

 

 

 

 

제비 _ 섹스폰과 경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