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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12-14 암스텔르담 (2) - 안네 프랑크 하우스, 반 고흐 박물관, 램브란트 하우스

pebblebeach 2019. 11. 9. 11:05


08:20 암스텔르담에서의 둘쨋 날 첫 스케쥴은 안네 프랑크

(1929-1945)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안네 프랑크의 집은 제2차 세계대전 중 2년 동안 유대인인 

프랑크 가족과 반 단 가족이 나치에 발각되기까지 숨어 지냈던 곳이다.

호텔에서 안네의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로 요르단 거리에 있다.



요르단 거리위로 웨스트커크(서교회)의 85m 높이의 종탑이 보인다

요르단은 17세기 초반 암스테르담 운하 건설이 시작하면서

발전했으며 이곳의 좁은 길과 수로망은 옛 길과 하수도를 따른 것이다.

1638년에 세워진 웨스트커크 교회에서 1966년 Beatrix 전 여왕의

결혼식이 열렸던 장소이며, 화가 렘브란트의 묘가 있는 곳이다.




안네의 가족은 1933년 히틀러의 나치정권을 피헤 암스텔르담의

요르단으로 이주하였다. 안네는 13세인 1942년 7월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1944년 8월 마지막 일기를 쓰고 그 3일 후에

가족 모두 체포되었다. 외손녀가 인터넷으로 입장 티켓을 예약하였다.



안네 프랑크의 하우스 내에서는 일체의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있다.

안네의 가족은 회전식 책상 뒤로 이어진 좁은 별채에 숨어 살았다.

좁고 어둡고 눅눅한 공간에서 소리도 낼 수 없고, 불도 켜지 못한 채

살았을 은둔 생활을 상상하면 마음이 무겁다.

안네의 집 이층에서 보이는 조용히 흐르는 운하의 선착장이 보인다.



안네의 일기는 1947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나도 중학교 때 읽은 기억이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서울의 손녀는 물론 안네의 일기를 

읽어 보았고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둘러보는 동안 마음이 우울하다.

유태인 가스 학살등은 영화도 많지만 400만 명을 학살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오스트리아 린츠 수용소에서 목격한  처참한 

현장과 유품등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기분도 전환할 겸 암스텔르담의 PANCAKE 먹거리을 찿아 나선다.

 


달콤 짭짭한 맛의 팬케이크는 집에서도 내 처가 자주 만들어 주는 

간식도 되지만 내가 주로 한 끼 식사로 먹는 음식이다.

햄, 치즈나 딸기, 바나나, 초콜릿 등 토핑은 다양하다.

넷이서 37유로 (약 50,000원)니 괜찮은 가격대다.




다시 또 걸어서 반 고흐 박물관을 향한다.

운하위의 꽃으로 아름답게 꾸민 다리, 하우스 보트 등

볼거리가 많아 걷는 것이 재미있다.가는 도중 소나기를 만나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샵에서 수베니아를 사는 즐거운 자유 여행이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27살 1880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890년 7월 권총 자살을 하는, 화가로서 비교적  짧은 기간인

10년 동안 875점의 회화와 데생 1,100점의 작품을 남겼다.

죽을 당시 고흐는 막 찬사를 받기 시작할 무렵이었지만 생전에 정식으로

판매된 그림은 동생 테오를 통하여 한 점<아를의 붉은 포도밭, 1888년,

푸시킨미술관 소장>이며 현재 기준 1,000달러 정도에 팔렸다. 



반 고흐 박물관은 고흐의 드로잉과 스케치를 포함한 700점

이상의 세계 최대의 고흐 컬렉션을 소장한 박물관이다.

때마침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반 고흐 미술관은 국립미술관과는 달리 사진 촬영은 금지다.

해바라기 특별 전시관 앞에 화면으로 고흐의 유명 작품을 

보여주고 여기서는사진 촬영이 허용된다.

해바라기꽃 앞에서 인증을 만들고....




고흐가 1888년 5월 초, 아를의 노란 집에 세 들어 살든집.

노란 색 건물에 파란색 하늘이 대비됩니다.




<아를의 침실> 1888.10

고흐가 아를에서 살던 노란색 집의 침실을 그린 것이다.




<꽃이 핀 아몬드 나무> 1890.2

고흐가 동생인 테오 부부에게 조카의 출생을 축하하는 선물로 그려 보냈다.

아주 밝고 온화한 색채로 동양적인 분위기기 풍기는 그림이다.




아래 그림은 곡식의 수확장면을 그린 <추수> 1888년다.

<까마기가 있는 밀밭>은 약간은 음울하고 슬픈 색갈이지만

<추수>는 정갈하고 전형적인 풍경처럼 그려져서 내마음에 든다.

나는 이 그림을 책상에 놓을 수 있는 스탠드로 사고

서울 손녀는 해바라기 그림을 액자에 넣을려고 큰 그림을 샀다.

<추수>는 내 고향의 풍경도 같고 양평 집 앞의 가을 풍경도 같다.



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그의 이름이 알려지고

작품가격이 폭등한다. 1890년에 약 값으로 준 그림

<데이지와 양귀비 꽃병>은 124년이 지난 2014년, 소더비 경매에서

한화 약 700억 원에 판매 되었다 한다.

지금 고흐 미술관의 소장 작품은 가격이 얼마나 될까?


고흐 미술관 입장권은 온라인 예약을 놓쳐 버렸다.

서울에서 딸이 암스텔르담까지 가서 반 고흐 미술관을 보지 못하면

암스테르담 여행이 무의미 하다고 해설을 듣는 특별 입장권

(Skip-the-Line- Van Gogh Museum Tour)를 보내왔다.

해설가 동반 입장료는 1인 100 유로이니 일반가의 5배다.

아래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다




둘쨋 날 저녁은 호텔 근처의 Italy Restauran에서 먹는다. 

나는 건강식 파스타를 시켰고 모두들 좋아하는 대로

스파케티, 피자 등을 시켜 먹었다.









8/14일 암스테르담 여행 세쨋 날, 오늘 오후에는 

다시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떠나는 날이다.

아침 느긋하게 렘브란트 하우스로 향한다.


렘브란트 하우스는 렘브란트 (1606-1669)가 1639년부터

1660년까지 20년간 작품활동을 하고 거주했던 대저택이다.

이 저택의 모든 방은 17세기 양식에 맞추어 모두 복구되었다.




17세기 해상무역으로 제국으로 발전한 네델란드는

예술면에서도 17세기는 황금시대였다. 

당시에는 종교를 대신하여 사실적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등 세속적인 주제가 주류를 이룬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화가가 Rembrant이다.




렘브란트 소개 책자에는 1634년에 결혼한 부인 Saskia

(1612-1642)와 아들 Titus의 초상화도 실려있다.

Titus는 1668년에 죽는다.

Titus는 런던 Wallace Collection에서 소개하였다.



렘브란트 하우스는 그의 작품보다 그의 삶을 보여주는 장소로

그를 파산으로 몰아넣은 수집품들이 인상적이다.

미술품과 가가구, 산호와 동물 박제까지 다양하다.




렘브란트는 상업화가로 명성을 얻어 대저택에서 호화스런

생활을 향유하다 과도한 미술품 수집과 투자 실패로 파산해 

유대인 지구에서 홀로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렘브란트는 생애 80여편의 자화상을 남겼다.

라익스 미술관 소장의 렘브란트 자화상을 소개한다.

렘브란트 22세 때의 첫 자화상이다.


렘브란트는 1669년 10월 63세로 죽는다.

이 자화상은 죽는해 63세 때의 모습이다.

세월의 깊은 골짜기가 얼굴에 파여있다. 




하이네켄의 역사와 제조 과정을 구경하고 갓 생산한

 생 맥주를 시음하는 하이네켄 익스피어린스 견학을 포기하고

암스테르담의 운하 크루즈를 타기로 결정한다.

렘브란트 하우스에서 가까운 곳에 크루즈 선착장이 있다.

성인은 12유로, 서울 손녀는 8유로다.



17세기 초반에 급증하는 인구 대책으로 기존 도시를 둘러싼

운하 (Canal Ring)을 건설하였고  운하를 따라 건설된 부유한

시민들의 대저택을 구경하는 암스테르담 베스트 투어 코스 하나이다.








암스테르담의 중심에서 북부의 중앙역까지 왕복한다.

날씨도 쾌청하고 바람도 없는 편안한 크루즈 여행이다.

하이네켄 공장 견학 대신에 선택한 크루즈는 탁월한 선택이다.

크루즈에서도 하이네켄을 마실수 있으니... ㅎㅎ







런던으로 돌아가는 유로스타는 암스테르담 출발 16:15

브뤼셀 도착 18:08, 브뤼셀 출발 18:56 런던 도착은 20:00 예정이다.

유로스타는 영국 입국 심사를 브뤼셀에서 하기때문에 브뤼셀을 경유한다.




입국 서류 심사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13세 미만은 조부모가 동행해도 부모의 허가서가 필요하다.

서울서 영국에 입국할 때 자동심사로 통과하였기 때문에

그 사실을 몰랐다. 런던 외손녀가 유창하게 영어로 설명하여

입국이 허가되었다. 다음주 스위스 여행을 대비하여 서울 아들에게

여행 허가에 관한 서류를 메일로 받아 스위스 여행에 대비하였다.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데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한다.

이 수고가 귀찮고 두려우면 여행사 페키지를 따라 다녀야 한다.

힘은 들어도 보람이 있어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2019년   11월  9일


양평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