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는 약 300개의 구스쿠(城)가 있으며 그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나카구스쿠 성터 (中城 城跡) 관광을 왔다. 나하 시내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나카구스쿠의 축성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1440년
좌키미 성의 주인 고사마루가 여기에 와서 북측 성곽과 세째 성곽이 증축하면서
지금의 구스쿠 형태로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가이드없이 (안내문도 없으니) 자연적으로 들어온 길이 후문이다.
1853년에 오키나와에 온 미국의 페리 제독이 "요새의 자재는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데
그 석조 건축물은 가히 절찬할 만한 것이다"라고 나카구스쿠의 성터의 훌륭함을
칭찬하였다 한다. 페리가 칭찬한 이집트식의 아취가 아름다운 후문이다.
둘째 성곽의 석축기법은 두부같이 네모나게 잘라 쌓는 방식이며
성곽의 곡선미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난다.
나카진 성벽과는 달리 나카구스쿠, 가쓰렌, 슈리 성터의
석회암은 부드러운 신생대의 퇴적층으로, 네모 반듯하게 잘라 사용한것이다
둘째 성곽에서 첫째 성곽으로 가는 문이다.
오키나와의 구스쿠는 오래전부터 석축 기술이 발달했다.
이곳도 두부 쌓기 석축 방식이다.
나카구스쿠 성터에서 가장 넓은 첫째 성곽으로 正殿이 있던 곳이다.
돌담 에서 바라 보는 태평양 바다 (?)
남측 성곽으로 나가는 문이다.
석축은 두부쌓기 방식이다.
남측 성곽에서 정문으로 나가는 길이다.
정문으로 들어왔으면 이곳으로 올라와야 된다.
우리가 역순으로 보고 있다.
서쪽을 향애 지어진 정문
남측 성곽에 있는 기원하는 배소 (拜所)
셋째 성곽은 석축기법에 있어서 제일 앞서간 귀갑(龜甲)쌓기로 쌓여 있다.
성곽아래에서 힘들게 계단을 올라와야 한다.
후문으로 들어오면서 보는 귀갑돌쌓기 셋째 성곽.
셋째 성곽에서 보는 둘째 성곽의 두부 쌓기 성곽.
나카구스쿠 성터는 지형을 이용한 아름다운 성벽의 곡선외에도
3종류의 다른 성벽 돌쌓기를 구경하는것 같다.
즉 남측 성곽의 막쌓기, 첫째 둘째의 바른층쌓기 (두부쌓기)
셋째 성곽의 귀갑쌓기 등이다.
후문 입구에는 우리나라 무궁화가 곱게 피어 있고
또 키작은 코스모스도 피어있다.
작년에 오키나와를 여행한 고등학교 동기가 어제 다녀온 고우리 대교의
고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지은 "고우리"의 뜻이라고 말해준다.
나카구스쿠 성터는 1972년 5월 15일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된 날에 일본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02년 12월 2일에는 "류큐왕국의 구스쿠및 관련 유산군"의 하나로 세계유산에 등록 되었다.
근대 오키나와 역사도 이번 기회에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1879년 메이지 정부는 류큐왕국을 강제로 일본에 편입한다.
태평양 전쟁시 1945년 1월 미군이 오키나와 가데나에 상륙하고
83일간의 치열한 전투끝에 6/23일 일본 사령관이 자살하면서
전투는 종결된다. 태평양전쟁에서 류큐 인구의 1/3이 희생되었다.
종전후 오키나와는 27년간 미국의 통치를 받다가
1972년 5월15일 일본에 반환된다.
2017년 1월 24일
오키나와 미사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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