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토 가족여행 세째날이다. 어제 도착한 아들가족은 늦잠을 자고
딸가족과 내처는 시내 백화점 구경을 간다. 나는 혼자서 교토의 이곳저곳 사찰 구경을 나선다.
9:00경 JR 교토 역 중앙출구를 나와 교토타워를 끼고 약 10분을 걸어서 히가시 혼간지 절로 간다.
아들, 딸, 가족과 내처는 오후 1시에 키요미즈에서 만나기로 한다.
빛나는 조명의 야간 교토 타워는 지난번에 소개했지만 흰색 탑은 교토의 상징이다.
히가시 혼간지는 다음에 방문할 서쪽의 니시 혼간지와 한 절이었으나, 1602년 도쿠가와 막부가
이 절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2개의 절로 양분하면서 지금크기로 축소됐다.
세워질 당시의 건물은 대부분 화재로 소실돼 지금 건물은 1895년과 1911년에 재건되었다.
09:20 절의 정문인 다이시도문 大師堂門 (御影堂門)은 높이 27m로 교토의 三大門의 하나이다.
본당인 고에이도 御影堂는 목조 건물로는 일본 최대크기다.
높이 38m, 정면 76m, 측명 58m로 규모에 있어서 나라의 동대사를 능가한다.
중국인 광광객에게 부탁하여 인증을 만들었는데 고에이도의 측면이 잘 나타나 있다.
고에이도 내부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는 Hair Rope, 케즈나 (毛網)이다.
절을 재건할 때 목재 운반용 밧줄이 끊어지는 사고가 빈번하자 여신도들의 머리카락과
麻로 엮은 특수한 밧줄을 사용했는데, 그게 바로 전시된 케즈나다.
케즈나는 사진에 잘 보이지 않지만 설명에 의하면 전국에서 총 53개의 케즈나가 바쳐졌으며
제일 큰 것은 길이 110m, 굵기 40cm, 무게가 1 톤이 나간다. 여기 전시된것은
니이카타의 신도들이 기증한 것으로 길이 69m, 굵기 30cm, 무게 375kg이다.
東혼간지에서 西혼간지까지 걸어가면 약 10분이 걸린다.
2개로 양분되기 전의 규모는 엄청 나게 컸을거라는 짐작이 간다.
東혼간지는 고에이도가 목조건물 최대규모라는 것과 케즈나 외에는 특별난게 없다.
니시혼간지 (西本願寺)절은 诤土眞宗의 총본산으로 고승 신란의 사후 사당을 세운게 이 절의 시초다.
1591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이곳에 그의 사당을 옮겨와 혼간지를 세우면서 엄청난 규모로
급 성장했고, 160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원 세력을 견제코자 동과 서로 양분시켜
지금의 히가시(東) 혼간지와 니시(西) 혼간지로 나뉘었다. 西혼간지는 세계문화유산이다.
御影堂 門
본당 고에이도 御影堂는 1636년에 건축, 길이 62m, 폭 48m, 높이 29m의 대형 건물.
고에이도와 아미다도를 연결하는 환종(換鐘) 복도
아미다도 阿弥陀堂 건물은 1760년에 건축, 길이 45m, 폭 48m, 높이 25m 이다
내부에는 신란 좌상이 있지만 들어가지 않아서 보지 못했다
수령 400년의 大銀杏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후시미 성(伏見 城 1574-1600)에서 가져온
파랑, 빨강, 노랑 등 극채색으로 치장한 사자, 기린, 신선이
조각돼있는 화련한 카라몬 (唐門)
문의 별명은 '해가 지는 문 (日暮門)'.
문을 장식한 아름다운 조각을 보고 있노라면 해 지는 줄도 모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미다도 門
오른쪽 다이코로 太鼓樓
니시혼간지에서 교토쿄엔 (京都御苑)까지 버스를 2번 바꾸어타고 간다.
교토쿄엔의 북문 건너편은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는 동지사대학이다.
1875년 창립한 同志社英學校로 시작, 1876년 御所의 북측에 지금의
캠퍼스가 지어지면서 同志社大學 今出川 캠퍼스가 시작되었다.
도시샤대학은 민족시인 윤동주 (1917~1945)가 일본 유학 시절을 보낸곳이다.
윤동주는 대학 재학 중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2년형을 선고받고
후꾸오카 형무소에 복역중 1945.2.16에 옥사하였다.
나는 작년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 "서시"가 세워져있는 용정 대성학교를
방문한 적도 있다. 윤동주 시인은 용정 은진중학교 출신이다.
정문에 있는 도시샤 대학의 교육이념을 표현하는 "양심비"가 서 있다.
19C 후반에 건립된 도시샤 캠퍼스는 붉은 벽돌의 아메리칸 고딕의 건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단체 투어객들이 열심히 캠퍼스를 둘러보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프로테스탄트 예배당.
창영관 彰榮館 등 5개의 벽돌건물 (도서관인 유종관-사진은 없음)은 모두 중요문화재이다.
영국인 한셀이 설계한 하리스 理化學館
독일인 Seel 이 설계한 클라크 기념관.
윤동주 시인의 묘는 지금 만주 북간도에 있으며 지난 1994년
동문과 시인들이 도시샤 대학 교정에 그의 넋을 기리는 시비를 세웠다.
시비의 서시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시비의 한글은 윤동주 시인의 자필 원고 이다.
윤동주 시인의 대학 동문인 정지용 시인의 시비도 바로 옆에 있다.
1869년 됴쿄로 천도하기 전까지 538년간 일왕이 살던 교토고쇼 (京都御所)를 중심으로
조성된 동서 700m, 남북 1,300m의 교토교엔 (京都御苑)은 거대한 정원이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교토고소를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여 관람하면 좋겠지만
내가 그정도까지 볼 필요는 없을듯하여 30분 정도 건물의 외각과 정원을 구경한다.
正殿으로 사용된 시신덴 紫寢殿 .
역대 일왕의 즉위식이 모두 여기서 치러졌다.
12:10경 교토교엔의 넓은 정원과 옛날 모습의 건물을 구경하고
서둘러 키요미즈 데라 (淸水寺)로 달음박질하여 달려간다.
넓은 정원의 산책로를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키요미즈테라 淸水寺는 나도 여러번 온 적이 있는 교토의 유명 관광지다.
연간 참배객 수가 300만을 넘는 이 절은 778년 세워진 이후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가
1633년 3대 쇼군 이에미츠 家光때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버스와 택시를 바꿔타고 키요미즈데라로 가는 언덕길 기요미즈자카 淸水坂는
마침 주말을 즐기는 국내외 관광객으로 인산인해이다.
입구인 인왕문과 뒷켠의 사이몬 西門과 삼층탑 三重塔이 보인다.
1632년에 재건된 삼층탑은 일본 최대 규모로 높이는 29.7m다.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삼층탑 아래 음료대에서 신사를 오르기 전에 입을 씻는다.
본당으로 가기전에 교토가족 여행 기념 사진을 만든다.
중요한 사업관계로 이번 여행에 참석치못한 사위를 빼고는 내 식솔 8명이 모두 모였다.
엄격한 뜻으로 말하면 식솔이 아니고 권솔이다.
모두가 당당히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고
어린 손주들도 할배 할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귀여운 것들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키요미즈데라 淸水寺
139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본당 무대의 높이는 15m이다.
교토하면 생각나는 붉은 색의 삼층탑과 나무기둥 청수사이다.
엄청난 인파의 본당.
본당을 빠져나와 왼쪽으로 가면 만나는 지슈 신사 (地主神社).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청춘남녀와 수학 여행단의 학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 이유는 이곳이 연애와 결혼의 성취의 전당이라고 한다 !!
오또와노따끼 (音羽의 龍)로 내려가는 계단.
오또와노따끼라는 이 물은 黃金水, 延命水라고 해 수행자가 즐겨 마시던 물이다.
세 줄기의 흐르는 물은 佛, 法, 僧으로의 귀의 또는 행동, 언행, 마음의 정진을 뜻한다.
또한 건강, 학업, 연애의 성공을 보장하는 聖水로 통하기도 한다.
물을 받아 먹으려는 사람들이긴 줄을 만들고 있다.
키요미즈 淸水란 맑은 물이란 절의 명칭이 유래된 곳이기도 하다.
마시지는 않았지만 聖水, 淸水가 흐르는 곳에서 딸과 함께 기념 인증을 한다.
손주 셋도 모두 건강, 학업, 연애의 성공을 마음으로 빈다.
오또와노따끼 앞의 찻집에서 간단히 스넥과 차를 마시는 즐거운 시간이다.
우리는 키요미즈자카를 내려오다가 공예품점, 기념품점, 찻집이 모여있는
산넨자카로 내려온다. 산넨자카 産寧坂란 산모의 안녕을 비는 언덕이란 뜻으로
순산을 기원하며 키요미즈데라까지 걷는 참배로 였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幕末의 유신의 주역인 사카모토 료마 (坂本龍馬)의 묘를 지나간다.
이곳은 호국신사로 막말유신과 태평양전쟁에서 죽은 영영 7만명을 모신 신사이다.
15분 정도 계단을 올라 묘역에 오니 사카모토 료마와 함께
한날 한시에 자객에게 피살된 유신지사 나카오까 신타로 (中剛 愼太郞)묘가 함께 있다.
나는 옛적에 "료마가 간다"라는 시바 료타로의 장편소설을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다.
시간은 벌써 3시다.
높은 사카모도 료마의 묘소에서 교토 시내를 조망해 본다.
기온 (祇園)을 가기위해서 야사까 신사 (八坂神社)에서 버스를 내린다.
야사까 신사에서 가부끼 공연이 열리는 미나미자 (南座)까지 이어지는 400m 남짓한 거리를 말한다.
1800년대에는 찻집이 있는 번화가, 1870년대에는 교토의 대표적인 유각으로 명성을 날린곳이디.
하루종일 차량의 물결이 끊어지지 않는 번화한 거리, 나는 오늘 여기 2번째로 온다.
기온거리에서 하나미꼬지도리 (花見小路通)로 들어와 본다.
옛 모습을 간직한 요정과 찻집이 모인 1 Km 남짓한 거리를 걷는다.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성은 게이샤나 마이꼬 (舞技)는 아닌 관광객인것 같다.
색다르게 보이는 歌舞練習場이다.
하나미꼬지도리가 끝나는 곳에 1202년 창건된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禪寺인 켄닌지 (建仁寺)가 있다.
3:45 건인사가 비장한 쌍용도 특별 전시회가 있지만
오늘 오후는 너무 많이 걷는것 같아 교토의 最古 禪寺를 떠난다.
하나미꼬지 도리에서 택시를 타고 산쥬산갠도로 가자고 햇더니 겨울에는 4시30분에 크로즈하는데
갈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그래도 호텔 가는 길에 있으니 가보자고 하였더니 다행히 5:30 크로즈다.
4:10 에 산쥬산겐도 三十三間堂에 도착하여 600엔의 입장료를 낸다.
산쥬산겐도의 길이 118m의 본당을 보면 33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어
산쥬산겐도라 부르지만 원래의 이름은 렌게오인 (蓮華王院)이며
1164년에 창건되었으며 본당은 1266년에 재건 되었다.
본당 내부에는 가운데의 천수관음좌상을 중심으로 양족에 1,000개의 천수관음상이
빼곡히 세워져있다. 모두 금박을 입힌 목상이며 팔이 40개씩 달려 있는데,
각각의 팔이 25개의 세상을 구제한다고 해서 천수관음 (40x25)이라 불리운다.
천수관음상의 얼굴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제일 앞쪽에 세워진 것은 천수관음을 수호하는 신상들이며 가운데의 본존불주위에는
국보로 지정된 4개의 사천왕상이 있다.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으나 인터넷에서
경이로운 모습의 천수관음상을 보면 좋을것 같다.
4:45 산쥬산겐도를 떠나면서 산쥬산겐도의 아름다운 정원을 사진에 담았다.
교토 가족여행의 3박 4일의 마지막 만찬 시간이다.
다양한 연령에 음식 기호가 모두 다르므로 콘세스를 모우기는 쉽지 않지만
호텔 옆의 AEON 플라자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우동이 있는 회전쓰시집으로 모인다.
상당히 고가의 오토로, 우니, 싱싱한 사바를 안주로 나는 내가좋아하는 사케를 마신다.
사케도, 맥주도 모두 값에따라 색갈이 다른 접씨가 높이 싸인다.
교토 사찰을 방문하면서 또 하나의 접씨 탑을 싸면서 즐거운 만찬을 마친다.
다음날 11월 30일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혼자서 게스트 하우스 옆에 있는 東寺 Toji로 간다
토지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57m 오층탑이 유명한 절이다.
헤이안 천도 당시 동쪽의 東寺, 서쪽의 사이지西寺를 세운게 시초다.
15C 농민 봉기때의 화재로 사이지는 전소됐고 토지의 남대문, 금당 등도
17C에 복원되었다. 지면관계로 여기는 오층탑 사진만을 올린다.
교토의 상징인 고쥬노토 五層塔
일요일 아침 일찍 아들 가족은 오사카로 떠난다.
어린 손주들에게는 나라의 유적지를 보는것 보다는 유니버셜스튜디오에서
하루를 즐기는것이 더 좋을것 같다는 판단이다. 물론 저녁 비행기로 서울로 가야한다.
호텔을 떠나면서 긴데츠 토지역과 東寺의 오층탑을 조망하는 멋진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도 게스트 하우스를 퇴실하고 일본 최초의 국가가 세워진
나라 奈良, 아스카 飛鳥로 관광을 떠난다.
게스트 하우스 Toji Machiya를 떠나면서 현관에서 기념인증이다.
2016년 10월 30일 아침
교토를 떠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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