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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8. 경주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구경하고

pebblebeach 2016. 5. 19. 18:12


신라의 고도 경주는 소학교 수학여행부터 시작해서 봄.가을 가족여행으로

 자주 찿는 우리나라 최고 역사 유적지가 있는곳이지만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옥산서원은 좀처럼 탐방기회를 갖지못하다가  금년 봄여행의 첫 여행지로 삼아

옥산서원, 양동마을과 포항, 감포를 거쳐 한려수도 통영까지 6일간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문원공 이언적(1491 - 1553)은 조선 중종때의 문신으로 그의 성리학은 퇴계 이황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가 타계한 후 1573년에 서원이 창건되었으며

 1574년 선조에게서  '옥산'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사액 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헐리지 않고

살아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 하나이다.


옥산서원의 첫번째 문, 역락문은 공자의 논어 첫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배워서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따온 이름의 문으로 이 문을 넘어 즐겁게 공부하자는 뜻이다.




옥산서원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



추사가 쓴 현판 뒤에 걸려있는 아래 현판은 아계 이산해가 쓴 현판이다.


강학공간의 구인당 현판은 한호 한석봉의 친필이다.


강학 영역은 학문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무변루, 구인당, 민구재(동재), 암수재(서재) 등의 건물로 이뤄져있다.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

비문은 호남의 고봉 기대승이 짓고 야계 이산해가 썼다.



옥산서원 앞의 계곡은

수려한 정자와 게곡이 어울려 운치를 더해준다.



이언적이 세심대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계곡의 너럭바위.

세심대란 이 계곡물로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구하라라는

성리학적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이 관직을 다하고 낙향하여 학문에 몰입하던 곳으로

 옥산서원 뒤편 10분 정도 거리의 물 맑고 산세좋은 곳에 위치한다. 





담장에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통해

대청에서 앞 계곡의 냇물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정혜사지 13층 석탑

국보 제 40호, 통일신라시대 9세기 석탑.

높이 5.9 m, 탑의 1 층 몸체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다.



2016년   5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