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6일째, 오늘은 보스니아 헤르초고비나의 모스타르로 여행하는 날이다.
아드리아海의 일출을 두브로브니크의 호텔방에서 감상한다. View가 있는 호텔이다.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Bosnia and Herzegovina는 우리는 국명을 보스니아로만 알고있었다.
1992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유고 연방을 탈퇴하고 독립 선언후 내전에 돌입했을때
우리의 매체는 대부분 보스니아 내전으로 표기하였다.
모스타르의 볼거리는 스타리 모스트 주변의 재래시장 올드 바자르이다.
올드 바자르는 터키풍의 재래시장이다.
터키 여행시 앙카라에서 본 올드 바자르에 비교 할 수는 없는 조그만한 재래시장이다.
보스니아 헤르초고비나는 크로아티아 면적과 비슷한 51천 평방 킬로의 면적에
인구도 비슷한 400만이다. GDP는 7,000불 수준 (2005년 추정)이나 현재의 GDP자료는 없다.
수도는 사라예보로 1973년도 이에리사, 정현숙의 한국여자탁구가 세계를 제패하며 사라예보 기적을 만든 곳이다
유고 연방의 분리와 해체의 역사를 조금 알아야 스타리 모스트를 이해할 수 있다.
보스니아 인구와 종교 분포는 14%의 크로아티아계는 카톨릭 문화권이며, 37% 세르비아계는 그리스 정교회 문화권이다.
48%의 보스니아계는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가 섞여있다.(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1992년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독립을 강행하자 세르비아계가 무장반란을 일으켜
3년 6개월간 이슬람계를 무차별 학살하는 소위 인종청소라는 내란이 있었다.
1995년 영토의 일부를 세르비아 (신 유고 연방)에 넘기고 내전은 종결된다.
네르트바 강에 걸린 교각 없는 석조다리 스타리 모스트 Stari Most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대표하는 오스만 건축물.
높이 20m, 길이 29m의 아치 형태의 석교.
스타리 모스트 석교아래 푸른 네레트바 강을 배경으로 인증을 하고...
스타리 모스트는 1566년 터키인 건축가가 그 전의 나무로 만든 현수교를 대신하여 만들었으며
단단한 석교는 계곡을 사이에 둔 양쪽 지역과 사람 등을 이어주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1992년 보스니아-헤르초고비나의 내전으로 1993년 11월에 포격을 받아 다리가 붕괴되었다.
이에 따라 다리를 사이에 둔 양쪽 지역 사람들의 왕래도 끊어졌다.
내전이 끝나고 1999년 유네스코의 지원 아래 다리의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고
2004년 완성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간혹 이벤트로 강물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빨강 펜티의 사나이가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
모스타르는 옛 부터 교역도시로 15세기 부터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모스타르라는 도시 이름은 슬라브어로 '다리'를 의미하는 '모스트 Most'에서 유래했으며
모스타르의 역사는 항상 다리와 함께해 왔다.
사진은 스타리 모스트에서 하류를 보고 찍었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 북쪽으로 보이는 이슬람 사원과 첨탑, 초록색 강, 험한 산자락이 어우러진 절경
스타리 모스트를 건너오면 터키풍의 거리에 노점, 가게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첨탑과 강 근처의 카페 테라스에서 스타리 모스트를 다른 각도로 찍을 수 있다.
모스타르의 상징이자 보스니아 내 민족간의 화해의 징표인 스타리 모스트.
동서 문화의 교차점 보스니아- 헤르초고비나.
동양적인 분위기 감도는 도시 모스타르에서 점심은 이슬람의 케밥을 먹었다.
사진은 바자르 안에 있는 이슬람 사원의 입구이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5개의 민족, 4개의 언어, 3 개의 종교가 있는 6 개의 공화국이 모인
연방국가였지만 1990년 구 소련 붕괴후 6 개의 공화국이 각각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동 유럽의 화약고라는 발칸 반도는 91년 슬로베니아 내전부터 98년 코소보 사태까지
수 십만명 (혹은 백만명 이상) 의 희생자와 수 백만의 전쟁 난민을 만들어 낸다.
버스 안에서 본 영화는 밀로셰비치 신 유고연방의 대통령이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촉발시켜
내전을 주도하여 '발칸의 도살자'라는 인종 청소를 벌이는 영화다.
특히 보스니아 내전만 20만명이 죽고 200 만명의 난민을 만든 대 살육전쟁이었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모스타르의 시내 공동묘지에는 1995년 전후 죽흔 사람의 묘지 비석이 많았다.
보스니아 헤르초고비나에서는 남부의 네움과 모스타르 2개의 도시를 관광하였다.
아드리아해의 크로아티와는 다른 슬픈 역사가 있는 나라이다.
보스니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의 라틴 다리가 있고
1961년도 노벨상을 받은 이반 안드레치의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가 비셰그라드에 있다.
드리나 강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사이를 흐르는 강으로 비셰그라드를 지나
사바강으로 흘러가서, 사바강은 베오그라드에서 다뉴브강과 합류한다.
학창시절 읽은 소설이지만 이번 겨울에 또 한번 읽을 책 목록에 올린다.
모스타르의 스타리 모스트도 보스니아의 유명 3 대 다리의 하나이다.
오후에는 4 시간을 이동하여 보스니아-헤르초고비나를 떠나 다시 크로아티아로 입국합니다.
(모스타르 12:30 출발, 출입국을 거치고 4시경 트로기르에 도착)
트로기르는 작은 섬으로 도시 전체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스며
4일째 여행지였든 스플릿에서 서쪽으로 약 25 Km 떨어진 곳입니다.
트로기르 도시의 기원은 BC 3세기 고대 그리스인 만든 식민 도시에서 시작
13~15세기에 도시 방어를 위해 성벽을 쌓았다.
본토에서 운하를 건너 섬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면 구 시가의 입구 북문으로 들어간다.
구 시가는 좁고 복잡한 골목이다.
성 로브로 대성당.
13C~15C에 걸쳐 지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 양식이 혼재.
종탑의 창문 모양이 층 마다 다르다.
43 미터의 종탑은 트로기르의 랜드마크다.
서쪽 정문의 1240년 라도반의 조각 작품.
사자에 올라탄 아담과 이브의 나상을 섬세하게 조각했다.
이 조각들은 크로아티아에서 로마네스크 고딕 미술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라도반의 자기 얼굴을 조각?
성당 내부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성 이반 예배당과
고딕 양식의 성가대석 등 볼거리가 많지만 일일이 사진으로 찍지는못했다.
아나 파블라 광장의 시계탑.
야자수가 있는 바닷가 산책로 바나 베리슬라비차 거리
스플릿의 리바거리를 연상하게 합니다.
구시가 서쪽에 있는 카메르렌고 요새.
석양의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부두와 치오보 다리 건너 치오보 섬의 석양의 아름다운 풍경.
구시가를 지나 다시 본토의 주차장으로 돌아갑니다.
성 베드로 교회
다양한 시대 양식의 교회와 궁전 등 중세 건축 박물관 느낌을 주는 섬 트로기르 입니다.
그래서 도시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것 같습니다.
트로기르에서 우리 여정의 마지막 아드리아 해의 연안 도시 시베니크로 향합니다.
트로기르에서 시베니크까지 1시간 30 분 이동합니다.
시베니크도 역시 세계유산의 도시 이지만 폴리트비체 국립공원을 가는
중간 기착지로 호텔 Solaris Hotels Ivan에 숙박하게 됨니다.
2015년 11월 3일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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