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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29 석파정과 서울미술관

pebblebeach 2013. 9. 2. 01:15

 

 

종로구 부암동 소재 서울미술관은 우리나라 근대미술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립미술관이다.

서울미술관은 대원군의 별서인 석파정 복원과 함께 2012년 개관했다

 

 

제1,2 전시실에서는 The Hero 우리 모두가 영웅이다 ! 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박찬호 선수의 야구인생과 미술의 만남의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

 피와 땀, 열정과 오기가 묻어나온 말랍 박찬호의 모습이 전시실 입구에 서있다. 

 

다저스 구장을 배경으로 포토 존에서 찍은 내 모습 ㅇㅎㅎ

 

내가 석파정과 서울미술관을 알게 된것은 '마침내 미술관' (안병광 지음)이란 책을 통해서다.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미술품 이중섭의 '황소'와 특별한 인연을 맺으며 미술품 수집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중섭, 박수근, 김기창,  등 근 현대 작가의 대표작 100여점을 수집했고 2012년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석파정을 복원하여 서울미술관을 함께 개관했다.

현재 열리고있는 상설전에 주옥같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저자 안병광이 미술 컬렉터가 되기까지 그리고 문화유산 석파정을 복원하기 까지의 감동이 쓰여 있는 책이다.

 

서울미술관은 독특한 공간의 동선을 갖고 있다. 석파정도 미술관의 맨 위층 (3층)에서 출입이 가능하다.

미술관 관람료 12,000원을 지불하고 입장하여야 석파정을 볼 수있다.

때마침 한줄기 소나기가 내리면서 물먹은 푸른 나무와 초목들이 싱그러운 석파정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3층 처마에서 석파정 외관만 보고는 돌아 갈 생각이었다.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서 5천원 짜리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면서 1 시간 비 끝이길 기다렸다.

보슬보슬 내리는 가랑비를 우산을 바쳐들고 석파정을 둘러본다.

 

삭파정 초입 암반과 초목 경관

 

 

암반에 소수운련암 巢水雲漣庵이라고 새겨져 있다.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 이라는 뜻이다

옆에 한수옹서증 우인정이시 신축세야 寒水翁書贈 友人定而時 辛丑歲也 라는 작은 글씨는

'한수옹이 벗 정이에게 신축년에 글을 써주다'라는 뜻이다.

한수재는 권상하의 시호이고 정이는 조정만의 자이며

신축년은 육십갑자 가운데 38번째로 조정만 (1656-1739)이 활동했던 시기로 보아 1721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미술관 에서 따옴)

 

 

산책로 '물을 품은 길'

 

석파정의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별채와 연결되는 작은 문으로 맷돌이 깔려있다.

 

안채와 별채사이의 장독들. 멀리 북악산이 보인다.

 

석파정은 오늘날 안채, 사랑채, 별채와 정자 등 4개 동이 남아있다.

(복원 작업중 발견된 상량에서 1872년 집을 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별당채는 현재 종로구 홍지동으로 이전되었고 아래는 ㄱ자형의 사랑채 이다.

석파정은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26호로 지정되었다.

 

ㅁ자형의 안채. 안채 뒷편 한단 높은 곳에 ㅡ자형의 별채가 있다.

 

사랑채 서쪽 뜰에 위치한 노송 (서울시 지정 보호수 제 60호)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이 소유하면서 별서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랑채 좌측 큰 암반위에 삼계동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대원군 이전엔 이 글씨와 문헌을 보아 삼계동 정자로 불렀을 것으로 보인다.

 

 

소수운련암의 뜻에서 산책로 이름을 구름길로 하였는 듯..

 

한단 높은 별채로 오르는 동편의 꽃담과 노송들

 

 

서울미술관의 옥상에 조성된 나무와 잔디.

 

현대 조형물

 

서울미술관 옥상 정원에서 보는 석파정 동편의 돌담과 나무들의 아름다운 모습

 

사랑채에서 인왕산 산 쪽으로 물길을 따라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중국풍의 정자.

몸채가 정사각형이고 지붕은 기와가 없고 동판으로 접어서 만들었다.

하단부는 석조 아치형이며, 정자로 들어가는 입구가 세 번 꺽인 돌다리로 되어 있다.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흥선대원군이 어떻게 석파정을 소유하게 되었는지가 나온다.

흥선대원군이 김홍근에게 삼청동 별장을 팔 것을 간청하지만 김홍근이 듣지 않자 하루만

빌려 놀게 해 달라고 하였다. 김홍근이 억지 승낙을 하자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이곳에 행차하도록 권하여

고종과 같이 석파정에 머물렀다. 그 후 왕이 거처한 곳을 신하가 감히 거처할 수 없다는 관례에 따라

김홍근이 다시는 삼계동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흥선 대원군의 소유물이 되고 말았다

-마침 미술관 책에서 -

조정만이 만든 소수운련암을 김홍근이 인수하였다가 다시 흥선대원군의 소유로...

세월이 흐르고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너럭바위 코끼리 모양의 암석

 

자하 만두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비오는 날 오후 자하문밖 부암동에서

 

2013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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