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마드리드역에 와서 톨레도행 기차표를 문의한다.
고속기차는 30분에서 1시간 간격, 08:50 출발 09:23 톨레도 도착한다.
톨레도역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택시를 탔더니 너무 일찍 대성당에 내려준다.
10시 입장까지 시간은 대성당 주위를 구경하면서 보낸다.
"톨레도를 보기 전에 스페인을 말하지 말라"
스페인을 제대로 알려면 톨레도를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톨레도는 로마인들이 전략점 거점으로 성채 도시로 건설됐으며
6세기 서코트 왕국이 세비야에서 수도를 옮겨오면서 발전한다.
톨레도는 711년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으며 이슬람교와
유대교, 카톨릭교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다.
1085년 국토회복운동을 통해 알폰소 6세가 탈환하고
로마 교황청은 톨레도를 스페인 교회의 중심으로 인정한다.
1492년 카톨릭 왕조에 의해 아랍인과 유대인은 카톨릭으로
개종하거나 추방당했다. 1561년 펠리프 2세가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면서 톨레도는 정치.경제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톨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카톨릭의 수석 대교구 성당답게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슬람 세력이 지배할 때는
300년간 모스크가 있었으나 1085년 파괴된 후 현재의
대성당은 1227년 페르난도 3세때 착공되어 1493년에 완공 되었다.
266년이 걸렸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이제 겨우 120년이 넘었다 ㅎㅎ.
대성당의 정면의 세 개의 출입구
가운데 문이 "용서의 문 Puerta del Perdon"
왼쪽의 문이 "지옥의 문 Puerta del Infierno)"혹은
종려나무의 문 Puerta de las Palmas라고 부른다.
오른쪽의 문은 "심판의 문" (사진에 보이지 않는다)
대 제단 Capilla Mayor의 제단병풍(1498-1504)
제단병풍의 정 중앙열의 상부부터 에수님의 십자가상, 성모승천,
예수의 탄생, 성체 현시대, 성모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다)
성가대실
각 의자의 등 받침에는 세밀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왼쪽 출입구 가까이에 서 있는 대리석 성모상은 일명 "백 성모상"
이라 하는 것으로 14세기 초 프랑스에서 조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서 있는 성모마리아는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사진도 인터넷에서 가져왔다.)
성가대실 중앙 전면의 확대
.
트란스파란테는 대리석, 벽옥, 청동 등을 사용하여
나르시소 토메가 조각한 바로크 양식의 벽 장식이다.
(1732년)
트란스파란테의 진면목은 맞은편 돔을 툥해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모습을 만들어 준다.
성물실의 천정화 聖物室 天井畵
17C 나폴리 출신의 화가 지오르다노가 그렸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상, 수 많은 천사들과 인물들이
250 평방 미터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안쪽 정면의 18세기에 만들어진 대리석 제단은
엘 그레코의" 엘 엑스폴리오"라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El Expolio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성의의 박탈)
그림은 엘 그레코의 톨레도 초기 작품 중에서
대작으로 꼽히는 것으로 1579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평온과 엄숙함을 간직한 예수님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성체 현시대 聖體顯示臺
성체는 에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
높이 3m, 무게 180Kg의 거대한 성체는 온통 금은보석으로
치장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매년 성체성혈 대축일에는 이 성체현시대를
가마처럼 둘러메고 거리를 순례한다.
톨레도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미로의 도시다.
좁은 길에 차가 지나갈 때는 벽에 껌딱지 같이 붙어 차를 통과시킨다.
산토 토메 성당을 찿으러 미로를 헤메다가 유대인 지구의
"시나고가"도 지나치고 이름 모르는 성당도 지나쳤다.
산토 토매 성당은 대성당을 지나 10분 거리 골목 안쪽에 있다.
엘 그레코의 명작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산토 토매 성당의 별도의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엘 그레코는 벨라스케스, 고야와 더불어 스페인 3대 화가로 꼽힌다.
오르가스 백작은 14세기 인물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성당에 헌납하는
유언을 남긴다.성당은 백작을 기리기 위해 의뢰한 작품이다.
성당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벽면에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실제 백작의 무덤 위에 걸려 있다.
사진 촬영 금지를 깜박하고 사진을 찍었다
.
이 그림은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백작의 장례식 당시 두 명의 성인이 홀연히 나타나
시신을 입관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1588년에 완성한 작품은 지상과 천상으로 나뉘어 있다.
지상에는 두 명의 성인이 입관하는 모습이고
조문객들 위에는백작의 영혼이 올라가는 천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조문객 속에는 엘 그레코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네모 안)
(사진은 인터넷에서 다운)
엘 그레코의 아들도 등장하여 백작의 시신을 가르키고 있다.
소년은 엘 그레코의 8살 아들로 옷에 삐져나온
손수건에는 출생년도 1587년이 적혀있다.
(사진 인터넷에서 다운)
엘 그레코는 죽어서도 살아있을 때 같이
산토 토메 성당을 스폰서하고 있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볼려는 사람은
누구나 입장료를 지불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의 집과 미술관 관람이다.
엘 그레코는 1541년 그리스의 Creta섬에서 태어났다.
엘 그레코가 스페인으로 온 것은 1577년 35세 때다.
그 후 죽을 때까지 약 40년간 톨레도에 머물며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미술관 담의 벽화 광고 앞에서 기념 인증이다.
엘 그레코의 작품은 스페인 대다수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산토 토메 성당에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대성당에서 <엘 엑스폴리오>
그리고 엘 그레코의 미술관에서
<톨레도의 풍경과 지도>를 감상할 수 있다.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1580년경
톨레도는 엘 그레코의 도시로 불리운다.
엘 그레코의 집과 미술관은 착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현재는 대성당과 더불어 주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엘 그레코 카페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는다.
톨레도 역사 전경이다.
이슬람 양식에 현재의 유럽의 건축풍이
가미한 톨레도에 어울리는 역사이다.
아침에 톨레도 왕복 티켓을 예매할 때
오후 15:25 출발 마드리드 도착 15;58로 구입했다.
첫날 관광을 못한 왕궁을 보러가기 위해서다.
왕궁 관광은 어제 마드리드 편에 포스팅을 했다.
내 처는 마드리드 역에서 호텔로 들어가고 나는 왕궁으로 간다.
오늘 톨레도 여행은 내 처와 둘이서만 하였다.
내일은 마드리드 마지막날 당일치기 세고비아 여행이다.
톨레도 여행을 마치고
2019년 3월 7일
마드리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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