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는 3년간 (1907 ~ 1909)의 용정, 연해주 의병투쟁후
1909년 10월 22일 드디어 역사적인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기위하여 하얼빈에 도착한다.
안중근은 10월 19일 엔치야에서 블라디보스톡에 들렸다가 이토의 만주 방면 시찰 소식을 듣고
3일간 거사자금을 마련하고 우덕순 동지와 이토 처단계회을 합의한다.
우리는 백두산 관광후 이도백화에서 버스로 2시간 이동하여 돈화 기차역에 도착한다.
돈화 - 하얼빈 야간 침대 열차는 약 8시간이 소요되어 아침 7시 30분 경 평방역에 도착한다.
평방역은 하얼빈 전 역으로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은
731 부대의 죄증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플랫트 홈도 없는 철로에 하차를 한다.
평방역
일본의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은 마루타 731 부대를 방문하고...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 전까지 중국인, 러시아인, 한국인을 잡아들여
마루타 (통나무의 뜻)라고 부르며 생체 실험을 한 곳이다.
나치스 유대인 대학살 이상으로 끔직한 죄를 저질은 731 부대는
패전을 앞두고 주요 부대 건물을 폭파시켜 버렸다.
중국정부는 대대적인 건물 복원 공사와 죄증 박물관 확장 공사가 금년 8월 15일 목표로 진행 중 이다.
안중근의사의 기념관과 거사현장이 있는 하얼빈 역으로 가면서
하얼빈 시가지 건물을 차창으로 찍었다.
하얼빈은 19C 무렵에는 쑹화강 (松花江)가의 어민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 였지만
1898년 러시아의 東淸 (동칭) 철도의 철도기지가 되면서 발전한 도시다.
1932년도 인구 38 만명으로 조사되었으며 현재 인구는 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다.
1918년 러시아 내전에서 패한 러시아 백군이 이 도시로 피난오면서 러시아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공동체도 만들어졌다.
나중에 설명하는 정률성 같은 작곡가가 배출되는 음악의 토양이 있는 도시다.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일본군은 1932년 하얼빈에 진주하였고 1935년 동청철도가
일본에 팔린 후, 그리고 1946년 이후 러시아인은 소련으로, 다른 유럽인들도 모국으로 돌아갔다.
(1945. 8.20.에는 소련군이 하얼빈을 점령했고 1946. 4월에 하얼빈은 중국인민해방군에 통치권이 넘어간다)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사살한 1909년 10월 26일은 하얼빈은 러시아가 통치했던 시기이다.
(하얼빈은 1898년 ~ 1923년은 러시아가 조차)
성 소피아 성당은 1907년, 당시 러시아 조차지였던 하얼빈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을 위해 건립된 러시아 정교회의 교회당,
역사적인 거사현장인 하얼빈 역이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2013년. 6.27.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때 시진핑 주석에게
안중근의사의 이토 저격장소를 기념하는 표지석을 세워줄 것을 제의하였다.
서학동 하얼빈시 문화신문 출판국 부국장으로 부터 '안중근의사 기념관'으로
현판을 달게 된 경위와 개관 전까지 있었던 숨은 뒷이야기를 들었다.
(서울문화사 사장 이정식교수가 기고하여 안중근의사 기념관 뉴스 레터
2015. Vol. 40 에 상세하게 게제되어 있다.)
기념관 외관은 의거 당시 하얼빈 역사 모형이며
벽시계는 영원한 시간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을 가르킨다.
2014년 1월 19일 한.중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여 개관식을 열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이토를 사살한 현장을 큰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2009.10.26. 안중근격폐이등박문사건발생지" 중국어 표지가 보이고
플랫폼 바닥에 안의사가 권총을 쏜 자리와 이토가 쓰러진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선명한 "안의사가 이토를 격폐한 장소" 표지판 사진이다.
하얼빈 역 안의 의거 현장에는 당초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그러다가 2004년, 하얼빈 동포들의 노력으로 플랫폼 바닥에 안의사가 총을 쏜 지점엔 세모 표지를,
약 7m 거리를 두고 이토가 서 있던 곳에는 네모 표지를 해 넣을 수 있었다.
70여 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안중근의사의 생애와 혼이 전시되어 있다.
간수 치바 도시지 (千葉十七)에게 써준 안의사의 마지막 유묵 "위국헌신군인본분"
(어록비는 경남 진해 해군통제부 영내와 1981년 일본 미야기현의 대림사에 건립되어 있다)
등 안의사의 주요 육필이 걸려있다.
추도시 왼쪽부터 주은래는 "안중근의사의 의거로 부터 한중 양국의 일본제국주의와 투쟁이 시작되었다"
손문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니 살아 백세가 못되는데 죽어 천추에 빛나는 구려!"
위안스카이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끝났구려!
살아 백 살을 못넘기는데 죽어 천년을 빛내는 구려!"
안중근의사는 10월 22일 부터 11월 1일 뤼순으로 압송될때까지
안중근의사는 오로지"국가안위노심초사"였다.
안중근의사는 하알빈역 선로가 보이는 제홍교에서 사전답사를 하며 성공을 다짐하였다.
제홍교 다리는 주차를 할 수 없어 차창으로 현장을 보는것으로 대신했다.
안중근 기념관이 있는 하얼빈 역사는 3년 내로 크게 신축한다고 한다.
물론 안의사 기념관도 더 큰 규모로 새로 지어질 계획이라고 서학동 부국장이 말한다.
중국 3대 음악가 중 한사람 정률성 (1918 ~ 1976)을 기리는
인민음악가 정률성 기념관이다.
정률성은 광주태생으로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남경, 상해 등지에서 작곡과 성악을 배웠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기획하였던 하얼빈시 문화국 부국장인 조선족 서학동 부국장이
정률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정률성은 1939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 연안송, 팔로군 군가 등을 작곡, 발표하였다.
그후 팔로군 군가는 1949년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지정,
1988년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공식 확정되었다.
정률성은 1945년 해방후 북한에 들어갔다가 1951년 중국으로 아주 들어갔다.
기념관에는 유일하게 정률성이 취입한 한국말 노래가 들린다.
"옛날에 금잔뒤 동산에 매기같이~~' 유명한 미국 민요 '매기의 추억'이다.
중국에서는 혁명음악가로 추앙되지만 우리에게는 한사람의 공산주의자 이다.
http://www.womaneconomy.kr/news/articleView.html?idxno=17448
제 11기 안중근의사 국외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단장인 이정식 교수가 정률성에 대해 쓴 글이다.
안중근의사는 하얼빈 도착 첫날 유동하의 사돈 김성백의 집에 숙박한다.
첫날 밤을 묵은 뒤 이튼날 새벽 김성백 집 인근의 조린공원 (옛 하얼빈 공원)을
산책하면서 이토의 처단 결행의 의지를 굳힌 의미있는 장소이다..
청초당, 연지 라는 유묵을 새겨진 돌비석.
안중근의사는 이토를 사살하고 "코레아 우라"를 세 번 외친다.
일본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러시아 당국은 안의사를 일본 총영사관에 인도한다..
안의사가 미조부치 검사로 부터 심문을 받았던 총영사관 지하실이다.
1907년에 세워진 옛 일본 총영사관 표지다. 지금은 하얼빈시 화원 소학교가 되었다.
안중근의사가 거사후 6일간 구치되었던 곳이다.
하얼빈의 번화한 거리 中央大街 (러시아거리)를 걸어본다
하얼빈시 인민방공승리 기념탑까지 약 1 Km는 세계적인 명품 가계와 1920년대에
파리와 모스크바의 새 양식이 이곳에 왔기 때문에 옛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하얼빈은 중국에서 10번째로 큰 도시이며 동북지방의 정치, 경제, 과학, 문화, 통신의 중심지이다.
헤이롱장 성의 성도이며 길고 추운 겨울때문에 '얼음도시'라는 별명도 있다.
헤이룽강의 지류인 송화강.
우리 한강 같이 넓은 강으로 송화강 남북을 강남, 강북이라 부른다.
12월이 되면 하얼빈은 영하 25도 내려가면서 송화강은 꽝꽝 얼지요
송화강 얼음으로 조각한 하얼빈 얼음축제는 삿포로 눈축제와
캐나다 퀘백윈터 페스티발과 함께 세계 3 대 겨울 축제로 꼽힌다.
하얼빈에서의 숙소는 비룡호텔 (Feilong Hotel)
2006년부터 하얼빈에도 안중근의사 숭모회 지부가 설치되었다.
안중근의사를 존경하는 중국 한족 莊賢雲 (장쉔윈)씨가 회장을 맡아 있다.
안의사를 존경하는 장회장으로부터 융숭한 저녁식사 대접을 받았다.
사진는 이정식단장과 통역, 장회장의 아들.
다음날 아침, 여행 여섯째날 하얼빈을 출발 대련으로 향한다.
930 Km의 거리지만 시속 300 Km 고속열차는 3 시간 30분에 도달한다.
안중근의사는 거사후 일본 경찰에의해 11월 1일 하얼빈을 출발하여 11월 3일 뤼순 감옥에 수감된다.
대련 기차역 북역에 도착하니 7월 13일 정오 12시다.
2015년 7월 13일
대련에서
'A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7.14.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 러일 감옥옛터 (0) | 2015.08.06 |
---|---|
2015.7.13. 다롄시의 고구려성과 뤼순 203고지 탐방 (0) | 2015.08.04 |
2015.7.25 산동반도 Weihai Point에서 골프 휴가 (0) | 2015.08.01 |
2015.7.11.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오르다. (0) | 2015.07.24 |
2015.7.10. 훈춘,도문,연길,용정의 조선족 연변자치구 관광 (0) | 2015.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