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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 규슈 나가사키시 데지마~나가사키 야경~평화공원 원폭 중심지⑤

pebblebeach 2016. 8. 31. 16:18

 


나가사키 원폭 그 이후



(12:10) 하우스텐보스 통과

네덜란드 말로 숲속의 집이란 뜻이다. 1992년 네덜란드 거리 조성 테마파크와 리조트로 운영 지금은 유럽 전역

을 테마로 확대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속의 한 지역을 유럽의 정취로 꾸미면서 전시 공간이 아닌 실제 거주

공간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지금 한국의 영어마을은 어떤가? 고사 직전에 있지 않은가?    


돔트론 전망대

정문을 찾지 못해 외곽을 빙빙 돌다가 주차장을 발견하고 잠시 차를 세우고 담너머로 구경한다. 설사 출입구를

찾았다 하더라도 적극적인 관람 의사 없었다.


(13:30) 오무라 요트항

하우스텐보스를 떠난 국도는 오무라 만을 끼고 남으로 달린다. 오른쪽으로 오무라만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하나가 나가사키 국제공항이고 왼쪽은 JR 철도가 달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실실 고파오니 정신이 산

만해진다. 제일 고민거리가 어디서 무얼 먹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동집 간판밖에 없다. 또 우동이다.


마루가메 제면 오무라점

나가사키 현 오무라 시 니시혼마치 사누키 우동 전문점

사실 일본 음식도 일반식당에서 볼 수 있는 우동, 라면, 소바, 덮밥, 튀김, 스시, 돈가스, 오코노미야키, 샤부샤부,

이것을 면류, 튀김류, 덥밥류, 초밥, 사브사브 등으로 묶으면 종류는 빤하고 종류별로 가지 수는 셀 수 없이 많고

복잡하다. 단지 외국인에게는 그저 단순하게 보일 뿐이다.     


가케우동*새우튀김*유부초밥

일본 최대 우동 체인점 회사의 식단이라 자랑하지만, 공산품처럼 생산하는 음식에 맛의 신이 들어 있겠나! 우리

속담에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 젓가락 입에 넣고 메뉴판 한번 쳐다보고 하다가 어느새 다 먹었다. 제일 맛 없는 우

동으로 기억한다.  


(15:15) 나가사키 항

오무라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다. 나가사키 첫 방문지는 데지마로 정했다. 정했다는 말은 사전에 짜인

일정이 아니라 나가사키로 출발하면서 나가사키 어디로 가지 하면서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처음 여행지를 정할 때 나가사키는 빠졌는데 야마구치 일정이 줄고 나가사키가 추가된 것이다. 아무 계획 없이 나

가사키로 들어와 데지마를 찾아 헤맨다. 김さん의 부둣가에 있다는 기억을 쫓아 부두가 적당한 주차장을 찾아 배

회하다가 선창 직원용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데지마를 찾아 부둣가를 돌아다녔다. 부둣가는 큰 화물선만 정박

해 있고 사람은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박さん 일어 덕에 이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가사키 전차

현재 데지마는 부둣가가 아니고 부두와 접한 도로변 전차가 다니는 행길가에 있다.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모퉁

이를 돌아서니 전차길이 나온다.  


전차길과 나란히 석벽이 나타난다. 데지마 남쪽 호안은 과거 바다와 접하고 있었는데 나가사키 항만 개량공사로

남쪽 바다는 다 매워져 육지로 바뀌었다. 현재 데지마는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옛날처럼 부채 모양의 인공섬으로

만들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데지마(出島)

나가사키는 부산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다. 바다, 항만, 대형부두, 선박, 전철, 산비탈에 늘어선 건물 등이 눈에

많이 익다. 일본의 근대사가 시작된 곳으로 에도 시대 막부로부터 공인받아 일본의 대외 무역의 창구 기능을 하면

서 외국의 선진 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곳이다. 당시 일본에 들어온 서양 문물이 많이 남아 있다. 데지마 상관, 오

란다 네덜란드 마을, 명의 중화거리, 우라카미 천주당, 원자폭탄의 피해지역, 카스텔라등이다.


데지마는 1636년 축조 1641년 네덜란드 상관 입주, 1859년 네덜란드 상관 폐지 이후 점차 매립하여 부두로 조

1904년 항만 개량공사로 바다가 매립되었다. 애도 막부의 쇄국시대에 막부의 지시에 따라 당시 외국과 무역

업에 종사하던 상인들이 출자하여 약 5,000평 규모의 인공섬을 만든다. 외국과의 모든 교류 행위는 이곳에서만

이루어지게 하고 데지마는 일본이 유일한 대외 개방 창구로서 일본 현대화의 거점 역활을 했다. 


데지마 서쪽 출입구 요금소

데지마 같은 유적지는 일본의 역사 유적지로 관광 차원을 벗어나면 우리에게 별로 감동을 주지 못한다. 차라리

수산시장이라도 가서 그들은 생선을 어떻게 판매하고 관리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유익했을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상관 각종 건물들


박さん과 안내인


(16:30)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터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터

데지마를 약 30분 정도 둘러보고 나니 대충 구경 끝이다. 문을 나와 그늘진 곳에서 잠시 햇볕을 피한다. 여름에는

위도와 상관없이 나가사키, 제주도, 서울, 다 비슷한 기온을 형성한다. 올여름 유난히 덥고 고온이 오래간다. 오늘

일정은 숙소를 정하면 끝난다. 도심을 살펴보면 곳곳에 호텔이 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제일 가까운 호텔로 갔다.

숙박비가 1인당 ¥10,000이 훌쩍 넘는다. 


(17:00) 호텔 세인트폴 나가사키 투숙

발품을 팔면 더 싼 값으로 방을 잡을 것만 같아 내일 일정과 연관시켜 평화공원 부근을 검색하니 호텔 세인트 폴

나가사키가 나온다. 차가 원폭자료관 입구에 다다르자 김さん의 기억력이 살아난다. 투어로 와서 숙박한 적이 있

다고 한다. 1인당 ¥6,000으로 정하고 방을 배정받는다. 


호텔 객실


(19:25) 나가사키 서양관 회전초밥집에서 스시로 저녁

나가사키에 와서는 나가사키 짬뽕을 먹어봐야 하는데 짬뽕 전문집이 눈에 안 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은 찾을 수

있겠지만 다들 적극적이지 않다. 호텔 옆 중화요릿집을 기웃거린다. 일본에서 중국 음식은 일본사람 취향에 맞춘

것이고 한국에서 중국 음식은 한국사람의 입맛에 맞춘 것인데 나는 요즘 국내에서도 중국 음식은 양념이 강해 잘

안 먹는다. 그런데 일본까지 와서 중국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20:50) 나가사키 후치 신사역 로프웨이 하부 탑승장

일본서 먹어본 회전초밥 중에서 제일 못하는 집이 걸렸다. 나가사키 맛집 사전 지식이 없으니 당연, 운수에 맡기

고 자리를 잡는다. 통상 저녁 바쁜 시간인데도 손님이 없다. 초밥집은 손님이 줄을 서야 신선도를 장담할 수 있는

데 벨트를 타고 돌아다니는 쟁반을 살펴보니 뚜껑이 없는 것, 있는 것, 야채를 올린 것, 불에 거슬린 것 등이 시간

이 지나간 순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김さん은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 사서 숙소에서 마신다며 바

로 귀가하고 박さん과 나는 나가사키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나시야마 공원으로 간다.   


이나시야마(333m) 전망대 광장

차로 올라 온 사람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온 사람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가사키에 가면 어딜 구경하러 갈까? 나가

사키가 다 내려다보이는 산이나 언덕에 올라 마음이 끌리는 곳을 정한다.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 고기잡이배들이

정박한 부두,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도심, 까만 기와를 이은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옛 마을, 마음

속에 지도를 그려 넣고 걸어 가 본다.  


나가사키 야경

나이 들면 야경 감상도 힘들어진다. 나가사키 야경은 2012년에 홍콩, 모나코와 함께 세계 신 3대 야경으로 2015

년에는 삿포르, 고베와 함께 일본 신 3대 야경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사이 세월이 흘렀으니 순위가 바뀐 지도

모르지만, 이나시야마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치는 야경뿐 아니라 언제라도 좋을 듯하다. 슬픈 것은 눈이 침침해 이

멋들어진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로프웨이 왕복 탑승료는 ¥1,230이다


左에서


右로


나가사키만 입구 양쪽 곶을 연결한 여신대교(女神大橋 메가미오오하시)


(07:40) 평화공원 가는 중

에어컨 리모컨 작동 방법을 몰라 잠시 소란한 것을 빼면 침대 두 개 이쪽저쪽 건너 다니면서 푹 잘 잤다. 아침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경양식 식사 후 바로 체크아웃하고 짐은 차에 실어 두고 호텔 맞은편 원폭 자료관, 평

화공원 걸어서 원폭 투하 현장을 둘러본다.  


평화공원 이정표

원폭자료관은 08시 30분 개관이다. 우라카미가와 강이 원폭투하 중심지를 지나는 지점 다리를 건너면 평화공원

이다,


원폭 투하 당시 지층 전시


원폭 투하 중심지


우라카미 천주당 잔해


동상제목 1945. 8. 9. 11:02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졌다. 나가사키 거리는 대부분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죽거

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 나가사키 인구는 약 240,000명 원자폭탄에 의한 사망자 수는 73,884명, 부상자 수는

74,909명 인구 절반 이상 직접 피해를 보았고 살아남은 사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평화공원


평화의 샘 분수대


분수대 벤취


평화기념상 참배도


평화기념상 광장


평화기념상


박さん과 樂山


우라카미 천주당


우라카미 천주당

나가사키를 떠나올 때 차가 마침 우라카미 성당 앞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렸다. 귀한 사진이 되겠다. 


일본 가옥 주차장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주변에는 원폭사망자 추도평화기념관, 평화회관, 평화공원이 있고


나가사키 평화회관과 원폭 자료관

피폭 전의 우라카미(원폭투하 중심지) 지구와 나가사키 모습, 원폭의 피해 실상, 핵무기 없는 세상 등 順으로 전

시되어 있다. 일본은 국민들에게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며느리가 일본 사람이라 내가

일본 역사를 얘기하면 자기도 모르는 내용이라며 놀란다. 일본은 역사교육을 불리한 것은 다 빼고 일본식으로 가

르친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왜 떨어졌는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이웃 국가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는

고등교육을 받은 며느리는 꿀 먹은 벙이리다. 전시물 중 빠진 것이 있다. 일본 침략의 잔혹사가 맨 앞으로 와야 한다.     


그 이후의 조형물은 나에겐 형식에 불과하고 의미도 없다. 세계는 모르고 관심도 없다. 미국은 애써 용서를 한다.

중국은 지금도 입을 굳게 다물고 복수의 칼을 갈고 있고 한국은 과거를 다 잊은 듯 일본처럼 역사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일본말이 사라진 명동을 가보라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후쿠오카를 가보라 한마디로 배알이 없는

국민이 됐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피해 집중지역 조망


지금의 나가사키


우라카미 천주당 일부 재현


원자폭탄 실물 크기 모형

길이 3.5m, 직경 1.52m, 무게 4.5톤  


원폭자료관 내부

'꼬방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적절히 해 주고 싶은 말이 생각 않나 망설이다가 내뱉는 말이다. 그렇다고 분이

다 풀린 것은 아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학살과 만행비하면 원폭 희생자는 희생자로서 급이 다르다. 일본

은 단 하루에 일어난 비극이지만 한국은 임진왜란 7년, 식민지 36년간 고통을 당하면 살았다. 일본이 평화공원을

조성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를 호도하려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누가 일본을 '가깝고도 먼나라' 라는 말에 공감을 한다.  





                                                       2016년 7월 7일

출처 : 경북중고 사칠회
글쓴이 : 안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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